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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올 때가 되어간다. 태풍이 오고, 천둥, 벼락이 치는 날이면 이 시가 생각난다. 2009년 교보문고 건물의 광화문 글판에 걸린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다. 이 시도 수능 필적확인 문구로 나올 법하다.


원문
대추 한 알
- 장석주(1955∼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2005년 작)
감상
시인은 붉게 익어가는 대추를 보며, 붉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태풍, 천둥, 벼락, 번개 등을 떠올린다.
나는 시를 읽을 때 해당 작품을 쓴 나이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시인은 1955년 생이고, 이 시가 발표된 것은 2005년이다. 20대라면 붉어지는 대추를 보며, 뜨거운 애정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시인은 이 때 50세이다. 인생의 쓴 맛과 고난을 겪은 나이, 불혹을 지나 지천명으로 들어가는 나이이다.
또 초록색 열매에서 껍질부터 붉은 기운이 물들고, 곧 쭈글쭈글해질 대추의 운명.
이 시점은 50세의 나이와 비슷하다.
태풍, 천둥, 벼락, 번개는 대추를 숙성시킨다. 인생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풍파, 이것이 인생의 깊이를 가져오듯, 대추를 성장시킨다.
대추는 애초부터 둥글둥글하다. '혼자서 둥글어질 리 없다'고 한 것은, 50대가 되며 둥글둥글해지는 본인의 시선을 투영한 것일까?
마지막 문구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2연 이후는 잘 회자되지 않는다. (교보문고 파워?)
사실 이 시는 1연에서 끝내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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