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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추운 날 어울리는 시]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 - 안도현

by 미래진행형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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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매우 추운 날입니다. 문득 연탄 보일러를 때던 방의 아랫목 담요 밑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시절 생각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다가 연탄이 떠올라 안도현 시인의 연탄 시리즈를 가져와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시 3편과 간단한 감상을 적어보겠습니다. 

 

1. 시인

 

1961년생. 원광대학교 졸업후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였으나,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

 

이후 전업 작가와 강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 yes24

 

현재는 평산책방 대표로 있다. 

https://www.psbooks.kr/

 

트위터를 좀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계정을 찾을 수 없다. 

 

연탄난로 : 출처-서울경제

 

2. 원문

너에게 묻는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근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1994.

 

연탄 한 장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1994.

 

반쯤 깨진 연탄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1994.

 

 

3. 감상

이 시들을 쓸 때도 겨울이었을까? 시인이 1961년생이니 30대 초반에 쓴 시들이다. 

시대의 좌절과 개인적인 불만, 열정이 느껴진다. 

 

'연탄 한 장'에서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 되뇌이고, 스스로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주저하며 연탄 한 장 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한다. 누구나 가지는 두려움이지만, 그것이 두려워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도, 도전하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구절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듣고 뇌리에 강하게 박힌 이유는 뜨겁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과 연탄재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연탄재라는 것이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난방도구로서 소임을 다하고 하얗게 변한 연탄재들이 쌓여있었다. 

 

지나다가 발로 차서 깨뜨리기도 하는 그것. 미끄러운 눈길에 깨뜨리면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것이 '연탄 한 장'의 마지막 연에 표현되어 있다.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사진: 연합뉴스

 

반쯤 깨진 연탄은 온전한 연탄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소위 반품 대상 연탄이다. 트럭에 실려서 돌아가면, 다시 으깨어져 연탄 재료로 활용되거나 버려질테니 연탄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연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소망한다.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연탄, 그 온전한 한 장도 되지 못하는 느낌을 극복하려는 의지. 밑불 위에 자신의 몸을 사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삶이 연탄 부스러기 같이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힘이 되는 구절이다.

 

 

모두 뜨거운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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