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만날 때마다 오래된 한시가 생각납니다. 고려시대 정지상이 썼다는 송인인데요, 짧아서 시 구절들이 오랫동안 기억됩니다. 총 28자의 한자에 봄과 이별의 정서를 담은 명시입니다.
1. 원문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送人 (송인)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비가 그친 긴 둑에 풀빛이 짙은데
- 雨歇 : 비 우, 그칠 헐
- 長堤 - 길 장, 제방 제
- 草色多 - 풀 초, 색깔 색, 많을 다(짙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그대 보낸 남포에는 슬픈 노래 울리네
- 送君 : 보낼 송, 님 군
- 南浦 : 남녘 남, 포구 포
- 動悲歌 : 움직일 동, 슬플 비, 노래 가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물은 어느 세월에 다 마를까
- 大洞江水 : 대동강물
- 何時盡 : 어찌 하, 시간 시, 다할 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데
- 別淚 : 이별 별, 눈물 루
- 年年 : 해 년
- 添綠波 : 더할 첨, 푸를 록, 물결 파
7언 절구(絶句)입니다.
절구는 4행, 율시는 8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감상
봄비가 내린 후 생명이 태동하는 제방을 바라보니, 이별의 정서가 대비되어 증폭되는 모습입니다.
마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예전 가수인 Ref의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오는 날보다 더 심해"라는 가사도 떠오릅니다.
정지상은 대동강 하류의 남포 어디쯤에 앉아있는 듯 하다.
눈물처럼 매년 계속 흐르는 강물, 그리고 새로운 봄의 기운, 떠나보낸 님을 생각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에서 여성적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 시의 시적화자는 정지상이 아니라, 어떤 여인 같기도 합니다.
남포에서 떠나보낸 님은 누구일까요.
누구길래 매년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시적화자를 남자인 정지상으로 놓자면, 짝사랑했던 누군가가 남포에서 배를 타고 시집을 갔을까요?
그래서 남포에 오면 그 여인을 생각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이 시를 썼을 당시의 정지상의 나이는 매우 젊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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