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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원문, 감상]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by 미래진행형 2023.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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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1950~

원문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1978

 

 

 

사진

감상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아마 이 시에서 가장 눈이 가는 구절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첫 문장, "너에게도"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너는 어떤 사람일까? 일반적인 사람들에 대한 은유일까? 아닐 것이다. 

 

귤값을 깎고 기뻐하는 장면을 시인은 직접 보았을 것이다. 

 

이 시가 창작된 시점을 상상해본다. (이 시는 1978년에 동인지 반시(反詩)에 발표되었다.)

 

(상상)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20대 후반인 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서 살아간다. 
친했던 선배('너'로 표현되는)와 술을 한잔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선배가 호기롭게 귤을 한봉지 들고 가라며 시인에게 사서 안기는 장면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았다며 기뻐하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시인은 순간 환멸을 느낀다. 
저주에 가까운 분노가 들지만, '너'에 대한 애정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너'는 내 앞의 '너'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너'같은 사람들이니...

이 선배는 직장 선배일 수도 있고, 
말로만 저항시를 쓰는 시인 선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시인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슬픔이야말로, 사랑의 전제조건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 뿐. 

세상의 슬픔을 공감하는 예수의 마음처럼... 

'너'에게도 슬픔이 있기를, 그 슬픔을 통해 사랑을 깨닫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 뒤에야 나는 너와 다시 걸을 수 있다고 다짐한다. 

 

그 뒤에 시인은 귤값을 깎은 '너'와 다시 슬픔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시인의 소심한 저주와 포용과 화해의 계획은 실현되었을까? 

어쩌면, 그 사람은 슬픔을 모른채로 그대로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그들이 그래왔듯이, 지금까지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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