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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사전

북촌에 한옥을 1천채 지은 남자 - 경성의 건축왕 정세권

by 미래진행형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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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권은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부동산 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건축왕' 또는 '한옥왕'으로 불립니다. 그의 주요 업적과 생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세권-위키백과

생애

  • 초기 생활: 정세권은 1888년 4월 10일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2세에 진주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진주사범학교를 1년 만에 수료했습니다.
  • 고향에서의 활동: 1905년 졸업 후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1910년에는 하이면 면장으로 취임하여 저축계 발족, 방풍림 조성 등 생활 환경 개선에 힘썼습니다. 1912년 면장에서 사임하였습니다.
  • 서울에서의 활동: 1919년 경성으로 이주한 후 1920년 건양사를 설립하고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1920-30년대에 경성 전역에 걸쳐 한옥 대단지를 조성하였습니다.
  • 민족운동 참여: 3.1운동 이후 조선 집짓기,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활동 등에 헌신하였으며, 부동산 개발로 얻은 수익을 민족운동에 지원하였습니다.
  • 말년: 1965년 9월 14일, 77세의 나이로 별세하였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사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한옥 개발 사업

정세권은 1920년대부터 서울 전역에 대규모 한옥 단지를 조성하였습니다. 주요 개발 지역으로는 북촌,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이 있습니다.

혁신적인 주택 공급 방식

정세권의 한옥 사업은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개량한옥 도입: 전통 한옥에 현대적 생활 양식을 반영한 개량한옥을 대량 공급했습니다.
  • 분할 납부 제도: 한옥 분양 대금을 일시불이 아닌 월 단위 또는 연 단위로 나누어 받는 정책을 도입하여 주택 구입의 부담을 경감했습니다.
  • 서민 주거 환경 개선: 서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였습니다.

민족의식과 문화 보존

정세권의 한옥 개발 사업은 경제적 이익을 넘어 민족의식과 문화 보존의 의미도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인들의 북촌 지역 확장을 저지하고 조선인의 주거지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으며,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조선어학회 운동의 재정을 지원하는 등 민족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긍정적 평가

정세권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주거문화를 개선하는 데 기여한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혁신적인 주택 공급 방식으로 서민들에게 편리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였고,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논란의 여지

일부에서는 그의 활동이 경제적 이윤 추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의 사업이 민족의식과 문화 보존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정세권의 업적은 한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의 노력으로 형성된 한옥 마을들은 현재까지도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